이름을 지을 때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이렇다.
“선생님, 외자 이름이 어쩐지 좀 세련되어 보이지 않나요?”
요즘 젊은 엄마들 사이에 종종 회자되는 이야기다.
외자 이름, 그러니까 성 뒤에 단 한 글자 이름을 붙이는 방식.
예컨대 ‘김 철’, ‘박 훈’, ‘이 경’ 같은 이름이다.
어감이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어 보여서일까, 그런 이름이 뭔가 있어 보인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늘 같은 대답으로 시작한다.
“좋지 않은 이름이 될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그 다음 질문은 거의 예외 없이 따라온다.
“조선시대 왕들은 거의 다 외자 이름이던데요?”
맞는 말이다.
조선의 27대 왕 중에서 이름이 두 글자인 왕은 손에 꼽을 정도다.
태조 이성계, 정종 이방과, 태종 이방원, 단종 이홍위, 고종 이재황 정도가 예외이고, 나머지 22명은 외자 이름을 썼다.
실제로 왕위에 오르며 이름 한 글자만 휘(諱)로 삼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외자 이름을 썼을까?
멋있어서? 간결해서? 아니다. 전혀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인 이유, 그것도 권위의 극대화를 위한 장치였다.
당시에는 ‘피휘(避諱)’라는 문화가 있었다.
왕의 이름과 같은 글자는 일반 백성이 함부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예를 들어 왕의 이름에 ‘윤’ 자가 들어가 있다면, 누구든 그 글자를 이름에 쓸 수 없고, 심지어 책자에 그 글자가 있으면 수정을 가하거나 삭제해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만약 왕의 이름이 두 글자였다면?
불편은 배가 됐을 것이다.
그래서 왕은 한 글자 이름을 쓰는 게 합리적이었고, 그렇게 관습이 되었다.
사실 왕 외에도 외자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경우가 있긴 했다.
대표적인 가문 양천 허씨 집안이다.
고려 개국공신 허선문의 공을 인정해 왕건이 준(準)왕족 대우를 해주면서 대를 이어 외자 이름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다.
허준, 허균 같은 이름이 그런 배경을 갖는다.
이쯤 되면 외자 이름은 ‘권위의 상징’이라기보단, 오히려 특권의 상징이었다고 보는 게 옳다.
하지만 중요한 건 여기에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름이 실제 생활에서 많이 불리지 않았다.
대부분은 자(字)나 호(號)를 불렀다.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모두 외자 이름이었지만, 일상에선 ‘이황’이나 ‘이이’라기보단 ‘퇴계’, ‘율곡’으로 불렸다.
오늘날과는 이름에 대한 맥락이 완전히 달랐다.
지금은 이름만이 평생을 따라다닌다.
매일같이 부르고 불린다.
당연하게도 그에 따라 말할 것도 없이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고, 심하면 인간관계, 결혼, 직장생활, 건강, 재물 운까지도 좌우할 수 있다.
이게 바로 과거와 다른 오늘날의 이름에 대한 현실이다.
좋은 이름이란 어떤 이름일까?
소리와 기운이 조화를 이루는 이름이다.
어금니소리, 혓소리, 목소리, 입술소리, 잇소리가 고르게 어우러져야 한다.
단순히 예쁜 이름, 남다른 이름보다도 기운의 균형이 중요하다.
그래야 이름이 가진 기운이 사람의 삶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외자 이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제약이 많다. 기운을 생성하는 음운의 구성이 단순하니 다양한 조합을 시도하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좋은 기운을 구성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이름은 단지 명찰이 아니다.
한 인간의 삶을 압축한 상징이다.
외자 이름, 물론 멋있어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겉멋 든 선택은 때로는 삶의 흐름을 거스르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해 두자.
특별하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왕이 아니고, 피휘의 제약도 없는 지금, 이름은 무엇보다 조화롭고 부르기 좋은, 그리고 기운이 맑은 좋은 이름이어야 한다.
외자 이름을 고민하는 부모라면, 이 점을 꼭 기억했으면 한다.
포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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