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참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마다 부모가 정성껏 지어준 이름을 하나씩 갖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어딜 가든 같은 이름이 참 자주 보입니다.
놀이터에서 아이들 부르는 소리만 들어도 대충 짐작이 됩니다.
"민준아!"
"서윤아!"
"지우야!“
한 동네에 민준이가 서넛쯤 있는 건 이제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동명이인(同名異人)이라고 부르죠.
같은 이름, 다른 사람.
그런데 간혹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같은 이름을 쓰면 같은 삶을 사는 거 아닌가요?”
질문인 듯 질문 아닌, 따짐에 가까운 말투로 묻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럴 때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립니다.”
이름은 분명 중요합니다.
사람의 성격 형성, 적성과 기질, 대인 관계, 심지어 배우자운과 자녀운, 건강운까지도 이름이 지닌 기운의 영향을 받는다고 저는 믿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이름이 같다고 해서 같은 운명이 펼쳐지지 않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태어난 때, 곧 하늘의 기운(天氣) 때문입니다.
같은 이름이라도 언제 태어났느냐에 따라 울림이 달라집니다.
1990년에 태어난 ‘지우’와 2020년에 태어난 ‘지우’는 사주팔자도 다르고, 그들이 살아갈 사회적 배경도 전혀 다릅니다.
시대가 달라지면 규칙이 달라지고, 기회가 달라집니다.
조선 후기 양반가의 '서윤'과
2025년 서울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서윤'이
어떻게 같은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이름은 같아도 하늘이 준 조건이 다르면 그 울림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는 태어난 환경, 즉 땅의 기운(地氣)입니다.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났는가, 어떤 지역에서 자랐는가, 교육 수준, 문화 자본, 경제력, 가족의 분위기...
이 모든 것이 그 사람의 기질과 인생 초기 경로를 결정짓습니다.
같은 이름의 아이가 한 명은 도시 고층 아파트에서, 다른 한 명은 산골 마을의 흙집에서 자란다고 가정해봅시다.
똑같은 ‘민준’이라도 성장의 궤도는 너무나 다르게 그려질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의 잘잘못이 아니라, 그저 땅이 정해준 조건일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느냐, 즉 사람의 기운(人氣)입니다.
아무리 좋은 이름을 가졌다 해도 매일 게으름을 피우고, 남 탓만 하며 산다면
그 이름이 가진 좋은 기운조차도 소용이 없습니다.
반대로, 이름에 다소 부족한 기운이 있다 해도 그 사람의 성실함과 끈기, 긍정적인 삶의 태도는 운명의 흐름을 바꾸기도 합니다.
같은 이름이라도 누구는 아침 해처럼 밝게 살고, 누구는 안개 속을 걷듯 살아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이름이라는 하나의 열쇠를 가지고 각자 다른 문을 열고 살아갑니다.
그 문 뒤에 무엇이 있는가는 하늘이 정한 ‘때’, 땅이 물려준 ‘환경’, 그리고 내가 선택한 ‘길’의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름 하나만 보고 모든 걸 말하지 않습니다.
이름은 하나의 ‘지도’일 뿐, 그 위를 어떻게 걸을지는 각자의 몫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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